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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리뷰

어떤 부부(夫婦)의 분업(分業)과 파워게임 !



어떤 부부(夫婦)의 분업(分業)과 파워게임 !



제주도에 몇 년 전 팀들끼리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숙소는 중문단지 내로 정하였고 그 당시 중문민속관광어촌 이라는 곳에 숙박을 하였다. 말이 민속관광어촌이지 제주민가 토속집을 복원하여 그 속에 현대식 호텔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그 곳의 사장님은 윤미자씨라고 서울美大 출신으로 윤씨농방을 창업하셨던 분인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숙박업소 주변에 의자부터 시작해서 돌의 배치, 연못 등 주변경관을 美的센스로 가꾸었다. 가는 곳마다 감탄사를 연발하였고 우리 일행 중에 화가부부가 있었는데 이를 증명이나 하는 듯이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오늘 얘기는 이 화가부부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된다. 이 화가가 그린 그림은 워낙 출중하여, 그림 한 점에 수 백 만원 내지는 수 천 만원을 호가한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서인지 호기심에 의해 그 화가에게 그림의 크기를 대충 얘기하고 그 정도 그림 한 점에는 가격이 얼마인지 직접 물어 보았다. 그러나 화가는 그림 값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림 값을 알려면 자기 집사람에게 물어보라 하였다. 아니? 자기가 그린 그림 값을 자기가 모르다니? 그 당시 실소를 하였지만 그 화가의 사모님한테는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전문적인 창작에는 예술이라는 호칭이 따라 붙는다. 예술에 금전을 결부시킨다는 것은 전문가의 창작성을 흐리게 할뿐더러 예를 들어 위의 경우와 같이 전문가가 자기가 그린 그림 값을 알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그 참! 분업도 분업 나름이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화가부부의 분업(分業)에 대하여 떨떠름한 느낌을 받았다. 굳이 표현한다면 고도의 상술(商術)에 대한 반감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전문적인 예술의 창작품에 대해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분업의 정도가 지나쳐 밀집단위인 부부에까지 침투하여 금전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좀 그렇다. 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라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무엇인가 부부의 의미란 것이 어떤 계산된 연출이 아닌가 보아지기도 하였고, 한편으론 예전에 읽었던 보바리 부인의 계약결혼을 연상케도 하였다.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부부의 계약기간이 자동 연장된다. 이것은 배후에 숨은 금전의 파워를 실감케 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어떤 개인이 파워가 있어 그 힘이 뻗치면 그 힘은 사돈에 팔촌까지 쭉쭉 뻗어나간다. 반대로 파워가 약해지고 힘이 없으면 이상한 상황까지 돌입하기도 한다.


직계존비속만 딸랑 남다가 부모와 자식 그리고 배우자만 남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대두된다. 살면서 그렇게 긴박한 순간까지 간다는 것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도 현실적으로 없는 얘기는 아니다. 굳이 순서로 얘기하면 서글픔의 순서로 보아지는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살다가 설상가상으로 일이 겹치다 보니 힘에 부쳤다. 그런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 자기가 힘이 점점 약해지다 보니 맨 처음 직계비속인 동생이 먼저 반기를 들어 자기에게 등을 돌렸고, 그 다음이 처자식이고 그 다음은 부모였다. 마지막 단계는 나 자신인데, 나 자신이 스스로 등을 돌리면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다. 자기가 아직 살아있는 것은 자기 스스로는 등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갈 때 나 이외의 모든 것은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사람에겐 공부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했는지 짐작이 간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지만 태어난 이상은 그 누구에게도 최소한의 기본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담모의 지론이다.


화가 부부의 분업(分業)이 가져다주는 묘한 느낌과 금전의 보이지 않는 힘에 관련된 인간관계의 서투른 공식 등은 우리 보통의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세상을 우물쭈물 살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확실한 선이 그어진다. 그 선을 눈으로 봐야만 믿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 않는 것은 그 만큼의 세월을 축낼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나 각 개인은 저마다의 삶이 주어져 있고 현재 처한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렇지만 각기 저마다의 삶이라 하여 양적으로 다른 삶이 될는지는 몰라도 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자기 스스로를 반추해 볼 때 각기 순간마다 현실이 되어 과연 어떤 순간의 창구가 현실의 마지막 순간의 영원한 창구라고 잘라 말 할 수는 없지만, 자기의 인생! 그래도 그 끝을 한 번 정도는 가늠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Post by Way-Dam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