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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정리/무아와 유아의 현대적의미

제9장. 개체의 경계를 벗은 한마음을 알면 진여(眞如)가 되고 깨닫지 못하면 육도윤회하게 된다 ?

 


☞ 요약---불교의 핵심은 한 마음에 있다?  

개체의 경계를 벗은 한마음을 알면 진여가 되고 깨닫지 못하면 육도윤회하게 된다 
  • 의식의 확장을 통한 무한은 무기물이 아니라 자각성(자기자신을 아는 것)이 있기에

    공적영지의 마음이라고 한다. 모든 유정의 마음은 공적영지를 갖고 있다.

    자신 안에 공적의 마음을 알면 진여가 되고 깨닫지 못하면 육도윤회하게 된다. 라고
    한다. 공적영지의 마음은 중생 누구나가 갖춘 보편적인 마음이며, 무한이 스스로 자각함으로서 그러하다. 즉 불교는 개체의 경계를 벗어서 도달한 무한을 무정물로 보지 않고 그 무한에서 발산하는 영지를 따라서 각자 안에 깃든 한마음으로 이해한다
    .

    개체의 경계를 벗은 마음이기 때문에 그것은 각자의 마음이면서 보편적인 마음인 한마음이다. 불교의 핵심은 한마음에 있다. 각자의 개체는 현상적으로 보면 인연화합에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화합이 사라지게 되는 무상한 존재이지만 그 무상한 현상자체가 반추되면 그 무한한 힘은 유정바깥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각각의 개체 내면 안에 개체성을 벗은 하나의 마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체성을 벗은 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자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무아이다. 자아안의 본성인 한마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 성불의 길이다. 미혹하면 생사윤회를 반복한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무한의 일심은 모든 유한한 현상적인 것들의 존재와 생성의 근거이다. 모든 종교적인 깨달음이 결국은 다 하나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무리 모두의 마음이 결국 무한의 깊이에서는 한 마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곳. 이것은 모든 개별적인 사물이나 개체의식의 경계
가 사라진 곳을 뜻한다. 모든 개
체의 경계를 넘어선 無限과 空이 바로
그것이다. 불교는 이 空이 추상적인 빈 공간 또는 無情의 무기물
이나 순
수질료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투명한 앎인 靈知가 빛나고 있다는 것, 그 점에서 바로 마음
이란 것을 강조한다.


空은 靈知의 마음이다. 이처럼 空이 스스로를 신령스럽지 않은 것이 性
이 신령스럽게 자기자신을 아는
것, 이것을 원효는 성자심해(자기자신
을 스스로 신령스럽게 이해하는 것)라고 하며 진울은 비고 고요하
며 신
령스럽게 아는 것, 비고 고요하다의 공적, 신령스럽게 안다의 영지쪽에서 공적영지라고 한다.


그러면서 불교는 공적영지의 마음이 특정한 부처
님의 마음이 아니라 有情 각각의 마음인 것을 강조한다.
즉 개체의 경계
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그 경계가 무한히 확산되어서 도달해야 할 한마음이 있는 그 자리이다. 그래서 진울은 인용문에서 보이듯이 공적영지를 바로 그대의 청정한 마음의 본체다 라고 말씀 하신다.

모든 유정의 마음은 공적영지를 갖고 있다
. 마음 자체가 무한이고 공이
며 따라서 공적영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 안에 이 청정한 空寂의 마음을 알면 眞如가 되고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육도윤회하게 된다.고 한다. 이 성자심해인 공적영지의 마음을 원효는 중생 누구나가 갖춘 보편적인 마음이다.

一心이다 라고 얘기하고 또 개체 안에 있는 무한은
진망일체를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인이고 일인 내지 무한이 스스로 자각하기에 성자심해가 된다. 그것을 心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용문에 그렇게 되어 있다. 이처럼 불교는 개체의 경계를 벗어서 도달한 무한이 무정물로 보지 않고 그 무한에서 발산하는 영지를 따라서 각자 안에 깃든 한마음으로 이해한다.


개체의 경계를 벗은 마음이기 때문에 그것은 각자의 마음이면서 보편적
인 하나의 마음, 한마음입니다.
저는 불교의 핵심은 바로 한마음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개체의 경계를 넘
어서서, 넘
어서는 전체 포괄자, 空, 一者, 無限 이런 것들을 유정 바깥을 객관적인 실체, 예를 들어서
물질이라든가 신이라든가 이데아적인 관념 등으로 설
정하지 않고 바로 각자의 유정의 마음으로 이해하
는 것이다.


각자의 개체는 현상적으로 보면 인연화합에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화합이
사라지게 되는 무상한 존재이
지만(지금 부처님이 무아를 설하신 첫 번째
일이겠지만) 그 무상한 현상자체가 반추되면 그 무한한 힘
은 유정바깥
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각각의 개체 내면 안에 개체성을 벗은 하나의 마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

개체성을 벗은 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자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무아이다. 무아의 두 번째
의미라고 생각한다.
자아 안의본성, 불성, 한마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 곧 부처가 되는 성불의 길이고
이것에 미혹하면 생사윤회를 반복한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무한의 일심은 모든 유한한 현상적인 것
들의 존재와 생성의 근거이다.


일심은 우주전체를 일으키는 空이고 무한이다. 그 무한과 空의 근본자리
를 부처님이 깨치셨기에 부처님

의 지혜가 인생과 우주전반 즉 존재와 생
성에 관한 일체의 心 유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깨치신 그 한마음이 결국 모든 유정에 공통적인 하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그 마음을 자각함으로서 그 공이 자각성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우리의 모든 유정이 다 그 공에 대한 자기자각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부처성불 시 산천초목 동시성불이라는 귀결이 나오게 된다.
비록 우리 중생은 표층의 경계에 따라서 제한된 마음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일심의 깊이를 다 여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모든 경계가 해체된 그 무한의 깊이에서 한마음으로 존재하는 부처님 마음은 우주만물, 모든 유정의 아픔을 직접 느끼고 직접 위로할 거라고 생각된다.


일자적인 근원을 갈구하는 마음에 주어지는 그게 바로 너인가? 우파니샤 드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 깨달음 또는 무한과 영혼을 추구하는 순례자
에게 들려오는 내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다. 내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다. 동학의 최재우가 겪은 신비체험 중의 하나이다.

저는 이런
모든 종교적인 깨달음이 결국은 다 하나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결국 무
한의 깊이에서는 한 마음으로 귀결되기 때문
이다.
바로 여기에 모든 종교가 대화하고 화합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된다. (Thought by 웨이담모, 한자경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