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보면 개체가 사라지고 드러나는 無限과 空은 의식성이나 자각성이 배제된 순수물질이 아니
라 바로 마음, 무한의 마음, 空의 마음이다. 부처님이 공을 깨달았다는 것은 개체의식의 생성유전
또는 소멸이후에 그 자리에 드러나는 무한과 공이 단지 물질이나 無가 아니라 자기 自覺性의 마음이
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부처님의 마음이 스스로 무한의 空이 되었기 때문에 空을 자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스스로 空이 되어서 空의 마음이 되면 일체 유정의 마음이 또한 그 경계너머에서 바로 그 마음과 하
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개체의 경계를 넘어서 도달한 무한이 모든 개체를 포함하고 있는 무한이기
때문에 이 무한과 공을 자기마음으로 자각을 하면 다른 개체들에게 들어있는 그 마음도 이 무한이니
까 결국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무한의 공의 마음을 한마음, 일심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우리 누구나가 그 공을 깨달아서 그 근본자리인 일심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음을 놓칠 수가 없는 것이며 개체의 경계가 사라진 그 무한의 한 마음을 환희심
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체의 경계가 사라진 그 전체의 무한과 공을 물질로 여기는가? 마음
으로 여기는가? 의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반대로 의식을 극대로 확산시킴으서도 얻을 수 있다. 前者는 자기자각성이 없는 순수
물질이고, 後者는 무한자체가 자기자각성을 가지게 된다.
이는 결국 어떤방식으로 무한에 이르는가? 무한에 나아가는가? 의 그 차이라고 본다.
우리의 의식이 경계를 갖고 있으므로 물론 거기서 출발하게 된다. 그런데 개체의 경계가 연기를 통
해서 해체된다는 것은 결국 경계 바깥의 것이 안으로 들어오고 안의 것이 바깥으로 나가서 개체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체의 무한을, 경계안의 의식을 극소로 無我시킴
으로서도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의식을 극대로 확산시킴으로서도 얻을 수 있다.
어떤 원이 유한자의 “나”라고 생각하는 그 경계이면 이 경계를 해체해서 무한으로 나아가고자 하
는데 이 무한에 이르는 방식이, 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 경계를 무한히 축소해서 극소화해서 이
의식이 사라지는 상태 결국 무한이 남겨지게 된다. 이런 방식의 이것을 의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식이 사라지고 나서 남겨지는 무한은 결국 의식이 없는 자기 자각성이 없는 순수물질이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무한을 이해하는 방식이 프로이드 방식이다.
또 하나는 반대로 의식을 무한히 확산해서 결국 의식이 무한으로 나아가는 것 그러면 무한 자체가
결국 자기의식을 가지는 것이고 자기 자각성을 가지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주제별 정리 > 무아와 유아의 현대적의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9장. 개체의 경계를 벗은 한마음을 알면 진여(眞如)가 되고 깨닫지 못하면 육도윤회하게 된다 ? (0) | 2009.07.11 |
---|---|
제8장. 의식의 축소를 통한 무한과, 의식의 확대를 통한 무한 (0) | 2009.07.03 |
제6장. 개체발생 전의 무한은 자기자각성을 갖는 마음이 아니다? (0) | 2009.06.20 |
제5장. 개체가 돌아 갈 곳이 무한이라면 無限과 空은 도대체 무엇인가? (0) | 2009.06.20 |
제4장. 무한은 결국 논리를 넘어선 그 무엇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0) | 2009.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