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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정리/무아와 유아의 현대적의미

제6장. 개체발생 전의 무한은 자기자각성을 갖는 마음이 아니다?


   제6장. 개체 발생 前의 무한은 순수물질 또는 에너지일 뿐 자기자각성을 갖는 마음이 아니다?

   空의 의미를 둘로 구분해 본다.
하나는 무한과 공은 물질로 이해할 수 있겠고 이는 서양적 사고(유물론적 사고)로
   서 프로이드에 의한 무한의 복귀 설명이다.
또 하나는 무한과 공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동양적 사고
   (불
교적인 사고)로서 한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개별 유기체는 경계를 유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
는 경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삶의
   본능이다. 그러나 이 경계의
유지는 경계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자극으로 인해 지속적인 긴장이고 고통일 수 밖에
   없다.(피곤함)


   죽지 않고 삶에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삶
자체가 자기경계를 유지하면서 산다는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그런데 생
명체는 긴장과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경계에서의 자극과 긴장이 멈추어지기
   를 바란다.

   경계의 해체를 통해서 더 이상의 자극과 긴장이 없
는 무기물 상태. 고통의 인식이 없는 무기물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
것을 프로이드는 죽음의 본능이라고 불렀다.

   경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삶의 본능으로부터 자극과 긴장과 고통이 생겨나고 이를 해소하는 죽음의 본능으로 이어지
   게 된다. 고통을 발생시키는
삶의 본능과 그 고통의 소멸을 지향하는 죽음의 본능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한다.
   삶으로 인한 고통은 죽음으로 인해 소멸된다.
 
   경계의 개체가
사라진 그 자리에 남겨진 空은 결국 의식이 없는 무기물 상태. 자기 자각성이 없는 순수한 어두움
   순수물질이 된다. 그러면서 프로이드는 죽음의 본능을 불교의 개념에 따라 열반원리이고 불교의 고통이 없는 니르

   바나를(의식의 내용을 비우고 마음의 내용을 비우는 것) 고통이 소멸한 무기물 상태로 간주 하였다. 이것이 서양이
   불교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無로 간주한다. 기독교의 神의 세계를 無로부터 창조했다. 무로부터 창조했기에
   무로부터 나온 것은 결국 무로 돌아간다.


   개체가 되돌아 갈 무한을 물질로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 뿐만 아니라 현
대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순수개체 발생 전의
   무한은 순수물질 또는 에너
지일 뿐 자기 자각성을 갖는 마음이 아니다. 이점에서 기독교와 현대불교가 상통한다.

(한자경 교수)(Thought by/Way-Dammo)